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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토

철원기행과 신비한 동물사전

철원기행

 

교사였던 아버지의 정년퇴임식을 맞아 모인 가족 앞에서 아버지는 굳은 낯으로 술잔을 연거푸 기울이더니 대뜸 이혼하겠다고 합니다. 무뚝뚝한 아버지, 그런 남편을 수십 년간 바라보며 속 터져온 성격 급한 어머니. 애끚은 며느리만 열심히 수발드느라 맘고생 몸 고생을 합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말입니다. 하긴 맨 입으로 남편과 차릴 가게 보증금 좀 보태달라고 할 순 없을 테죠.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답답한 가족의 행보가 씁쓸하게 배꼽을 잡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랙코미디던가요. 당연하지만 모두 계산된 연출입니다. 생소한 배우들과 현실에 가까운 1:1의 롱테이크, 딱 한 두번 눈꼽 만큼 나오는 배경음악, 지극히 사실적인 스타일에 마치 언캐니 밸리(로봇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심리적 반감이 드는 현상)처럼 영화가 싫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영화를 봤나' 하면서 말입니다. 하여튼 남의 집 얘기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가족일 지라도 결국 어른이 되고 어느샌가 자기중심적이 돼 버리는 사람의 이해관계가 가감없이 드러납니다. 그 위에 쓸쓸히 서 있는 아버지까지.

 

촬영지가 굉장히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 구경 실컷 했습니다. 까마득한 눈보라 속 고립된 철원을 보자니 가족 간의 차거운 간격이 절로 그려지네요. 그들을 한데 묶어 한바탕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기도 했지만요. 몇몇 씬에선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김대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합니다. 다 큰 어른이라면 권해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신비한 동물사전

 

해리포터 원작을 읽을때의 재미와 극장에서 상상하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때의 괴리감, 그리고 여러가지 불만사항으로 사실 원작만 좋아했고 영화는 4편까지만 보고 그 이후는 안봤습니다. 그리고 이번 신작은 책으로 나왔다지만 찾아보지 않아서 오히려 기대가 많이 되었습니다. 원작자가 직접 극본까지 맡는다길래 더욱 그랬습니다.

영화는 꽤 괜찮게 다가왔습니다. 정돈된 스타일과 화려한 그래픽 효과로 신비한 동물을 잘 표현해내고, 어린 주인공들을 내세울 땐 시도할 수 없었던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로 꽤 몰입해서 전개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점도 분명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지루함의 문제와 상영시간을 2시간이나 끌고 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중간중간 호흡이 늘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마법사의 이야기라고 굳이 스토리까지 구태의연하게 전개시키는 건 글쎄요. 원작자만의 스타일일 수도 있겠지만 작금의 트랜드와는 좀 안맞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특히나 여주인공은 너무 심한 편이라 원작자가 여성인데 왜 저렇게 여성을 과거의 이미지로 고정시키나 싶을 정도네였습니다. 오히려 마법대통령쪽은 확실한 캐릭터성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 한 개연성을 보여준다면, 여주인공은 현대식으로 너무 나대다가 어떨땐 약한 여자라구요라는 내숭을 떨고 있습니다. 참 오락가락 하면서 계속 긴장을 고조시키니 보는 입장에선 짜증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생 캐릭터는 그에 반해 참 맛깔나게 표현한 거 같으니 원작자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주인공의 경우 주관적이긴 하지만 연기톤이 너무 우울합니다. 상대와 눈도 잘 안맞추고 (심지어 좋아한다는 동물과의 교감장면에서도 그런 것들이 보입니다. 분명 어른인데 어른같지 않다고나 할까요. 단역으로 나오고 말줄 알았던 뚱뚱한 조연 캐릭터가 그래서 더 살아보였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끝나고 아쉬움이 가득할 때 호빗이 나와서 달래줬던 것처럼 이번엔 해리포터의 공백을 동물사전이 채워주긴 합니다. 스토리, CG, 배우들의 연기까지 뭐 하나 아쉬운 점을 못 느꼈습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해리포터는 제가 중학생 때 진짜 재미있게 봤는데 지금 다시보면 조금 유치한 느낌이 듭니다. 딱 그 나이 때에 정말 재미있었던 영화였어습니다. 물론 시대가 변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이번 영화를 보면서 지금 20대 후반인 나이에 봐도 전혀 유치하다는 생각이 안들면서 해리포터를 재밌게 봤던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준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즐거워 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해리포터 보다는 조금 더 로맨틱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더 좋았고, 깔끔한 스토리와 마무리가 다음편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앞으로 10년간 이 영화를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린시절 해리포터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라면 만족하실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할리 퀸을 위한 영화라고나 할까요. 그냥 할리 퀸 보는 재미로 스토리 상관없이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봤습니다. 그리고 심장없는 시커먼 인챈트리스도 참신하더군요. 심장있는 인챈트리스는 그냥저냥 별로였습니다. 할리 퀸은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이후로 흠뻑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여자 캐릭터였습니다. 배트맨은 액스트라라 그냥 넘어가고 조커 역이 상당히 아쉬웠는데 젊은 시절의 게리 올드만이 했으면 대박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나이가 많지요.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최민식 아저씨가 조커 역을 했으면 그 자체로 명품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최민식 아저씨가 미친 놈 연기는 발군인지라 어떤 씩으로 소화할 지 참으로 기대되는데 그런 행운은 앞으로도 없겠지요.

 

 

가려진 시간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게, 너무 감동적으로 본 영화인데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지만, 제가 봤었던 한국영화 중에 영상미가 가장 뛰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멈춘 시간을 표현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 나네요. 캐릭터의 감정 전달이 너무나 잘 되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울컥했던 적이 없는데 중간 중간 울컥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일단 스토리가 굉장히 짜임새가 좋고, 간단한 떡밥들을 뿌리지만 완벽히 회수해 냅니다. 보면서 '아, 저게...'라고 생각한 장면이 꽤 있었습니다. 마지막 여운이 대단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당장 한 번 더 보러 가고 싶어집니다.

금요일 밤이나 주말 밤에 한 번 더 보러가야 겠습니다. 평일 오후 3시에 봤었는데, 뒷자리 학생들이 영화 상영 내내 떠들더라구요. 사람 없는 한적한 시간대에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럭키

 

원작인 '열쇠도둑의 메소드'를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럭키에 관객들도 많이 들었다고 해서 리메이크를 괜찮게 했나 싶어서 어느정도 기대를 하고 보았습니다. 조금 실망입니다. 유해진뿐 아니라 주연급 캐스팅은 연기가 전부 기대 이하에 몇몇 조연들만 캐릭터에 맞게 잘 한것 같습니다. 원작에 비해서 판을 벌려 놓았으면, 그에 걸맞는 결말을 지어야 하는데, 이건 원작도 아니고 리메이크도 아닌 듯 합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웃음을 주는 코미디도 아니고 원작을 보지 않고 보았다고 해도 수준이하의 작품이 되어 버린건 사실입니다. 원작을 보셨다면 절대 보시기를 추천 드리지 않고, 그냥 보실려거든 킬링타임용으로 보시는 건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