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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오사카

운명을 믿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의 특별한 만남

500일의 썸머 : 운명을 믿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의 특별한 만남

 

사랑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저도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극장에서 보려고 마음먹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 먼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요즈음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연락처를 찾아가면서 만나고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생이 되도록 핸드폰 번호도 없던 제가 갑자기 연락을 취하니 굉장히 놀라더군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로 마주하고나니 소통을 너무 하지않았던 제 자신에게 화도 나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것 마냥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용기내어 졸업앨범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핸드폰 번호들을 더듬어가며 소중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놀라다가) 정말 고맙게도 먼저 '한 번 만나자'고 말을 해주더군요. 이 말을 들었을땐 솔직히 뛸듯이 기뻤습니다.

 

나 같은 친구를 기억해 주는 것도 고마워 죽겠는데 선뜻 약속까지 잡아주니 더 바랄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요 몇일동안 만나고 다녔는데 한 친구가 제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질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통틀어 가장 많이 같은 반을 했었고, 짝도 가장 많이 했던 여자애였습니다. 만나기 전부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헤어진 후에도 이름이 입에서 맴돌고 자꾸 떠오르더라구요. 심지어는 집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감정을 숨기고 조용히 있는다고 몰랐지만 그 여자애를 굉장히 짝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만나기는 힘들겠지만 기억에 남을 추억거리를 만들어줘서 고맙게 느껴집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딴 길로 센것 같지만 다시 돌아와서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 먹게된 또다른 이유는 숨겨져 있던 옛 감정이 갑자기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줄거리는 제목에도 적혀있듯이 운명을 믿는 남자인 조셉 고든 레빗(톰 역)과 그렇지 않은 주이 디샤넬(썸머 역)의 사랑이야기 입니다. 썸머는 자신의 짝을 톰은 자신의 꿈을 찾아가면서 성숙해져 나가는 작품이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볼때나 영화관에서 볼때 변합없이 항상 놀랍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애니메이션 기법인데요. 톰의 '행복함'을 한번에 표현해주는 사랑스러운 '파랑새', 500일의 시간을 넘나드는 '계절변화', 썸머의 파티에 초대받았지만 기대했던과는 다른 현실에 상처받은 톰이 뛰쳐나와 도로위에 서있는 장면들이 저에게는 참 색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위화감이 들었을 법도 한데 캐릭터의 감정을 더욱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자면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운명'을 믿던 톰이 결국은 현실을 바라보게 되고, '운명'은 그저 '환상'에 불가하다고 생각했던 썸머는 '운명'을 믿게 됩니다. 기적도 없고, 운명도 없다고 믿게 된 톰은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운명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게 되고 그의 앞에 '어텀'이라는 여자가 나타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톰이 '썸머'라는 여자를 떠나 보낸 후 '어텀'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 이 장면이 그토록 아름다울수가 없더라구요. 톰을 찾아온 또 다른 계절이 그의 운명일지 참 궁금합니다. 여러분들은 운명을 믿고 계신가요? 영화리뷰보다 쓸데없이 제 얘기가 길었습니다. 글솜씨가 없어서 제 머릿속 이야기를 모두 담지 못했지만 이해해 주세요.

 

영화가 끝나갈 즈음에 이런 생각만 남게 됩니다. 저 또한 욕을 바가지로 퍼붇고 싶습니다. 이게 뭔 상황인지... 톰에게는 희망고문이나 마찬가지인 연애 아니 연애였는데, 저도 첨에 한번 이 영화를 보고 썸머를 욕했었는데 다시금 많은 연애를 해보고 보니 톰이 얼마나 무신경한 남자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영화 안에서 두사람의 모든 장면을 그려내지는 못하지만, 비틀즈의 링고스타 이야기처럼 톰은 썸머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나 고민 없이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합니다. 그러면서 혼자 들뜨고 혼자 실망하고 혼자 상처받고 어디에도
썸머는 어떨까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반면에 썸머는 몇번씩이고 톰에게 자신을 바라보라는, 혹은 자신을 잡아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지만 그걸 톰이 눈치를 못챕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연애 중인 연인들이 얼마나 서로간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제 연애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 500일의 썸머입니다. 역시 연애경험의 유무에 따라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썸머가 자신을 잡아달라고 눈치를 던졌는데도 불구하고 톰은 모르고 있다라는 부분을 보니 나중에 연애하는게 힘들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다시금 생각해봐도 톰이 그저 불쌍하게 느껴질 뿐 썸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톰의 '기대'와 '현실'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뭐랄까 역시 현실은 쉽지 않구나 라는게 몸 속 깊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확실히 이 영화는 첫번째 보면 꼭 화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필히 2번은 봐야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은 영화 중 하나입니다. 로맨스 영화 중 2위로 생각하는 것 보면 역시나 현실을 잘 반영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명의 시나리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라 더욱 그렇게 느끼기 쉬운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 영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다시보면 톰은 연애의 환상에 빠져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썸머에게 소개하면 같이 좋아할꺼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썸머의 취미같은 건 무시하고 남이 썸머를 모욕할 땐 가만히 있다가 자기를 욕하니 주먹질을 하죠. 썸머의 운명도 보면 썸머가 무슨 책을 읽는 지 관심을 보인 사람이죠. 썸머의 남편이 첫 만남 때, 썸머가 읽고 있는 책에 관해 물었다는 대사가 떠오릅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니 확실히 톰이 썸머의 취향을 무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흘려보낼 대사인데 놓치지 않고 감상했습니다. 톰이 운명을 믿다보니 썸머에 대한 감정이 집착으로 전해진 것 같습니다.

 

편하게 생각하면 되는 것도 복잡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지쳐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다가오는 '가을'을 톰이 잘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운명을 믿는 저로서는 끝까지 톰을 응원할겁니다. 저는 이프온리, 노트북 같은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로맨스 영화라 하면 서로가 좋아한다는 마음이 절실한게 보고싶거든요. 500일의 썸머는 그런 면에 있어서 너무 현실적이라고 하니 역시 현실은 필요없습니다. 제니퍼 러브 휴잇이 요즈음에는 영화에 출연을 안 해서 못 보고 있는데 가끔씩이라도 출연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욕이 저절로 나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저 또한 톰처럼 그 때의 그녀에게 그리 행동했고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투닥거리기도 했구요.


남녀의 언어는 참 다르고 알더라도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이 남자들의 아련한 로망이라면 '500일의 썸머'는 남자들에게 연애의 현실을 가르쳐주는 것 같아서 저에게는 피하고싶은 영화 중 하나입니다. 원제목보다 한국제목이 더 잘 지어서 참 좋은 영화인듯. 추억으로 남을지 현실로 이어질지 어떤 쪽이 되든 인생에 또 하나의 좋은 기억이 되기를 바랍니다.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는 '너가 상상하는 것은 다 허구야! 현실은 딱 이 모습이야!'라고 못 박는 것 같아서 남자라면 누구나 괴로운 영화로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에게도 씁쓸한 영화 한 편으로 남았네요. 솔직히 아직도 썸머가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썸머도 유부녀가 된 마당에 톰의 미래가 '500일의 어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저에게도 '이터널 선샤인', '500일의 썸머'를 보면서 언젠가 눈물 흘릴 날이 있겠죠? 이미 현실을 겪으셨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자리잡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